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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가폭락이 큰 경제적이슈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왜 유가폭락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문의를 가지게 되었는데요 이번에는 유가폭락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2020년의 석유 시장은 러시아와 사우디 아라비아 간의 가격 전쟁과 COVID-19 위기에 의해 급격한 세계 경제 침체의 큰 두가지 이슈로인해 현재까지 대부분의 석유 투자자와 경제학자들이 생각할 수없는 가격 하락을 초래했는데요

미국, 사우디, 러시아의 국가간의 문제에서는 미국은 셰일가스로인해 세계생산량 1위, 사우디와 러시아는 2,3위를 다투고 있는 상황에서 사우디에서는 줄어드는 석유수요에 생산을 줄여서 어느정도 감산을 해야하지 않겠냐 했는데 러시아에서는 그대로 생산하겠다고 얘기를하자 *치킨게임이 시작된 겁니다(이로인해 공급량 증가로 석유가격 감소)

러시아에서 감산을 하지 않고 그대로 생산하겠다고 한 이유는 미국의 셰일가스 기업들이 빚을내 채굴시설들을 잔뜩 시설해놓은 덕분인데 일정가격이상은 셰일가스로 돈을 벌어야하는데 이번기회에 유가하락으로 인한 피해를 셰일가스업체에 주려는 생각을 한거죠 또, COVID-19(코로나 바이러스)로 국제 투자심리 위축으로 인해 유가 하락은 업친데 덮친격으로 하락하게됩니다.

1월만해도 60~70달러까지 가던 유가가 점점하락하더니 WTI(미국 서부 텍사스주의 중부 지역에서 생산되는 원유)가격이 이 20년 4월 21일 기준 10.01달러까지 하락하게 됩니다. 20년 6월 12일 현재는 36.26달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약 4월 21일에 투자했다면 3.5배의 가격상승을 기대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네요...

아무튼, 붕괴 후 유가가 완만 한 반등을 보인 반면, 해당 흐름이 지속 가능한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세계 경제가 침체되면서 석유 수요가 공급보다 빠르게 급감하고 있다는게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의 소란은 석유 역사에서 또 다른 극적인 장을 보여 주었으며 석유역사 50년에 걸쳐 급격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러한 가격 변동은 1970년대 초의 아랍 석유 금지, 1990년대 초의 제1차 걸프전, 2007~2009년의 경제불황, 2020년의 COVID-19 전염병을 포함한 주요 사건의 긴 목록에 의해 촉발되었습니다.

사우디 아라비아와 러시아가 늦게 생산량 감축에 동의 한 이후에도 2020년 초의 석유가격격변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석유가격이 근 50년간 어떻게 변동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치킨게임 : 두 명의 경기자들 중 어느 한쪽이 포기하면 다른 쪽이 이득을 보게 되며, 각자의 최적 선택이 다른 쪽 경기자의 행위에 의존하는 게임

 

1. OPEC의 형성

OPEC(석유수출기구)는 1960년에 바그다드에서 이란,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베네수엘라의 5대 석유 수출국이 국제 석유자본에 대한 발언권을 강화하기 위해 결성된 기구로 목적은 "회원국의 석유 정책을 조정 및 통일하고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며 정기적인 공급을 확보하기 위해 석유 시장의 안정화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처음 OPEC은 1960년대 *카르텔로서 가격결정력을 사용하지 않았고, 유가는 미국 원유시장이 세계 원유시장을 계속 지배하고 미국의 석유 매장량이 많기 때문에 1970 년대까지 비교적 안정적이었습니다.

※ 카르텔 : 같은 종류의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서로 가격이나 생산량, 출하량 등을 협정해서 경쟁을 피하고 이윤을 확보하려는 행위

 

2. 아랍 석유 금지

1973년 *욤 키 푸르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미국 지원을위한 보복에서 석유를 생산하는 아랍 국가들은 결과적으로 미국에 원유 수출을 중단, 원유의 가격은 초기 1974 년 배럴당 약 24달러에서 56달러로 치솟았습니다.

※ 욤 키푸르 전쟁 : 1973년 10월 6일 ~ 10월 25일까지 이집트와 시리아가 주축이 된 아랍연합군과 이스라엘이 치른 전쟁이다.

 

3. 이란 혁명

1979년 2월 팔레비 왕조의 국왕 독재를 무너뜨리고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이슬람 정부의 지도자로 부상했다. 정치적 불안의 결과로 이란의 생산량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공급이 줄어들어 아랍 석유수출 금지보다 원유 가격이 훨씬 높아졌습니다. 석유는 배럴당 56달러에서 125달러 이상으로 급등했습니다.

 

4. 레이건, 미국 석유 산업 규제 완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1981년 취임 한 직후 국내 석유 및 휘발유 생산 및 유통에 대한 가격 및 배분 통제를 폐지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하여 원유가격은 1986중순 26달러, 1981년 1월 배럴당 약 113달러가량 떨어졌습니다.

 

5. 제 1차 걸프 전쟁

1990년 8월 이라크는 쿠웨이트를 침공하여 석유 가격이 배럴당 34달러에서 77달러로 급등했습니다. 1991년 초 미국이 주도한 군사 연합이 쿠웨이트에서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군대를 제거한 후 가격은 약 37 달러로 떨어졌습니다.

 

6. 2008 년 오일 쇼크

2008년에는 전 세계 생산량을 줄인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유가가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1) 베네수엘라는 회사 자산 국유화에 대한 법적 분쟁으로 Exxon Mobil(미국석유화학회사)에 대한 판매를 중단했습니다. 

(2) 이라크 수출은 가장 최근 전쟁에서 회복되지 않았으며, 노동 파업으로 나이지리아와 영국 북해 유전의 생산량이 감소하였고, 무장 세력은 나이지리아에서 석유 시설과 파이프 라인을 폭발시켰습니다.

(3) 멕시코 또한 주요 유전 중 하나에서 생산량이 크게 감소했습니다.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유가는 2007년 12월 배럴당 약 118 달러에서 2008년 중반까지 165달러 이상으로 상승했습니다. 이 급등은 뉴욕 세계 무역 센터와 워싱턴 펜타곤에 대한 9/11 테러 공격의 여파로 2001 년 말 약 28 달러로 바닥을 돌린이래 유가의 상승 추세를 막았습니다.

 

7. 경기 침체와 금융 위기

2008년 하반기에는 심각한 경제위기(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와 함께 경기 침체가 심화되었습니다 . 2009년 1월까지 석유는 배럴당 50달러까지 하락했으며, 세계 경제가 회복되면서 연말까지 95달러로 반등했습니다.

 

8. 미국 셰일 오일 혁명

미국의 석유 및 가스 생산량은 지난 2020년 초까지 약 10 % 증가하여 *프래킹 기술의 발전으로 국가의 여러 지역에서 막대한 매장량을 확보했습니다. 프래킹은 미국을 세계 최대의 석유 생산국 중 한 곳으로 되돌려 미국의 수입 석유 수요를 줄이고 미국을 순 수출국으로 만들었습니다. 텍사스와 뉴 멕시코의 페름기 분지 지역은 대부분의 OPEC 국가보다 더 많은 원유를 생산했습니다. 

그 결과, 원유 가격 월 2020년 초 50~60달러로 2010년 대비 20달러 가량이 감소하였습니다.

※ 프래킹 기술 : 수압균열법의 영어표현인 hydraulic fracturing의 줄임말로 물, 화학제품, 모래 등을 혼합한 물질을 고압으로 분사해서 바위를 파쇄해 석유와 가수를 분리해 내는 공법

 

위와같이 원유가격의 흐름은 큰 사건에 의해 상승 혹은 하락하였습니다.

대형 산유국의 원유흐름에 차질이 생기는 큰 사건들이 생길 때마다 역사적으로 석유가격이 크게 변동 되었는데요 그런 시점들이 전부다 투자기회 였음을 참고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또, 우리는 위를 토대로 산유국에 큰 전쟁이 발생한다던지, 신기술 발견 등으로(프래킹 기술 등) 원유산업 근간을 뒤흔들만한 일이 생길 때 투자에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한다고 봅니다.

향후 미국이나 러시아, 사우디 등의 산유국들이 어떻게 움직이냐에 따라서 석유 가격의 변동이 있겠지만 셰일가스든 뭐든 현재 대체 에너지를 발견해 나가는게 세계적인 흐름으로 보이기 때문에 향후 석유가격은 일련의 큰 사건이 있지 않은 이상은 높아지기 보단 낮은가격에서 횡보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대형 산유국들과 정치적인 상황들을 항상 주시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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